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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홍갑표 마티아 작성일16-11-16 10:42 조회521회 댓글0건

헌정유린, 국정농단 박근혜 정권 퇴진과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시국 미사강론내용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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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정유린, 국정농단 박근혜 정권 퇴진과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시국미사 강론 전문
(2016. 11. 14 월요일 19시. 광화문 세월호 광장)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루카 4,18-19.21)

이천년 전 어느 날 예수님께서 나자렛의 한 회당에서 이사야 예언자의 두루마리를 펴시고, 감격스럽고 장엄하게 선포하십니다. 그리고 이천년이 지난 오늘 예수님의 제자이자 벗인 우리는 이곳 광화문 세월호 광장에서 가슴 벅찬 기쁨과 솟구쳐 오르는 희망으로 선포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우리 위에 내리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을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가난한 이들에게 기쁨이 될 수 있습니다. 살며시 옷 적시는 가랑비 같은 나눔만으로도 가진 것 없는 이들의 생명 같은 희망을 샘솟게 하고, 불의와 착취를 꾸짖는 작은 외침만으로도 자기 탓 없이 헐벗은 이들의 벗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가난한 이들에게 기쁨이 되려고 오늘 여기에 모였습니다.

우리는 잡혀간 이들을 자유롭게 할 수 있습니다.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세상을 거스르는 낮춤과 내어줌과 보듬음의 소박한 몸짓만으로도, 세상에 짓눌리면서도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을 푸르른 생기 넘치는 삶에로 초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잡혀간 이들을 자유롭게 하려고 오늘 여기에 모였습니다.

우리는 눈먼 이들이 보게 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홀로, 때로는 세상과 더불어, 하느님께 우리를 맡기고 우리 안에 하느님을 모시는 것만으로도, 보이는 것에 둘러싸여 보아야 하는 것을 보지 못하는 이들에게 믿음 희망 사랑의 새 세상 열어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눈먼 이들이 보게 하려고 오늘 여기에 모였습니다.

우리는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킬 수 있습니다. 알아주는 이, 보아주는 이 없다 해도 기쁨과 열정으로 당당하게 작은 삶 가꾸는 것만으로도 스스로에게, 다른 이에게, 그리고 세상에게 버림받고 어둠 속 깊이 숨어버린 보잘것없는 이들이 다시금 빛 속에서 자신을 꽃피우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키려고 오늘 여기에 모였습니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보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해야만 합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곳으로 가야 합니다. 그곳에서 하느님의 뜻을 이루어야 합니다.

주님의 길을 함께 걷는 사랑하는 믿음의 벗님들!

우리는 오늘 하느님의 뜻을 이루려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우리는 오늘 불의를 저지르는 자를 역겨워하시지만(신명 25,16 참조), 악인의 죽음이 아니라 악인이 자기 길을 버리고 돌아서서 사는 것을 기뻐하시는(에제 33,11 참조) 하느님의 뜻을 우리 안에 다시금 새기고 모든 이에게 밝히기 위해서 함께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대통령의 헌정유린과 국정농단이라는 초유의 사태로 말미암아 한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혼돈의 늪에 빠진 모든 이에게 하느님께서 기쁨과 희망과 힘과 용기를 주시기를 간곡하게 기도합니다. 우리는 오늘 죽임의 길을 걷던 불의하고 부패한 이들이, 그들의 만행으로 말미암아 죽어간 이들과 씻을 수 없는 참혹한 고통 속에 울부짖는 이들 앞에 무릎 꿇고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회개함으로써, 삶의 길을 걷기를 엄숙하게 촉구합니다.

정의를 사랑하고 정의를 이루기 위해 헌신하고 계시는 믿음의 벗님들, 우리 모두 한마음으로 힘차게 외칩시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체하지 말고 당장 대통령직에서 물러나 법의 엄중한 심판을 받으십시오! 제3자 뇌물 또는 직권남용 혐의가 있는 미르‧K스포츠재단 강제 모금 의혹, 공무상 기밀 누설 혐의가 있는 연설문과 정부 인사(人事)·외교·안보 관련 국가 기밀 유출 의혹에 대해서 솔직하게 밝히십시오. 공권력에 의한 백남기 농민 살인, 국가의 존재의미를 의심케 만든 국민을 수장시킨 세월호 학살, 자랑스러운 조국의 역사를 왜곡하려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국민을 전쟁 불안으로 몰고 간 사드 배치 발표, 위안부 할머니들을 두 번 죽이는 굴욕적인 한일 위안부 합의, 노동자들을 사지로 몰고 가는 노동개혁이라는 이름의 개악 추진. 이루 말할 수 없는 범죄 행위들에 대해서 국민의 머슴이어야 할 대통령으로서 무엇을 했는지 이실직고하고 국민의 심판을 달게 받으십시오. 그리하여 새사람으로 거듭나고 제발 사람답게 사십시오.

박근혜 대통령의 그늘에서 호가호위하던 집권여당 새누리당과 청와대, 정부 관계자들에게도 엄중 경고합니다. 여러분이 살 길은 벼랑 끝에 몰린 대통령과 갈라서서 ‘나는 모른다, 내 책임은 없다.’고 자위하면서 그동안 국민들에게 향하던 칼날을 대통령에게 들이대면서 ‘하야’니 ‘탄핵’이니 읊조리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여러분이 살 길은 오직 하나, 그동안 맹목적으로 대통령을 추종함으로써 오늘의 이 참담한 사태를 야기한 공범임을 국민 앞에 솔직하게 시인하고 심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것임을 명심하십시오.

애초에 ‘최순실 게이트’라고 불리어진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현직 대통령 ‘박근혜 게이트’라는 초유의 사태에 직면해서, 우리는 중요한 또 한 사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바로 이명박 전 대통령입니다. 2007년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 대선 경선 후보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 측은 고 최태민 목사 일가와 박근혜 후보와의 관계를 거론하며 “박 후보가 대통령이 될 경우 최씨 일가에 의한 국정농단의 개연성은 없겠는가.”라고 꼬집었습니다. 오늘의 기막힌 박근혜-최순실의 국정농단을 예견한 것입니다. 이러한 신묘한 통찰력을 지닌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 내 비리로 말미암아 퇴임 후 치러야만 할 심판을 피하고자, 차기 대통령으로 국정농단의 징후가 농후했던 박근혜 현 대통령이 당선되도록 불법적으로 개입한 의심을 받고 있습니다. 국가정보원과 국군사이버사령부의 선거 개입,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컴퓨터 조작 등 18대 대통령 선거에서 저질러진 부정 의혹으로부터 당시 국정최고 책임자였던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씨앗을 뿌린 이명박 전 대통령, 지금 왜 침묵하고 있습니까? 침묵으로 국민의 정의로운 심판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분명히 착각입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임기 동안의 ‘사자방’(4대강 부실 비리, 자원개발 난맥상, 방위산업 비리) 의혹은 차치하고라도 박근혜 대통령에 관련된 사항에 대해 분명하게 밝히고,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주님께서 열어주신 정의와 평화의 길을 함께 걷는 믿음의 벗님들!

지난 토요일 수백만이 넘는 국민이 서울을 비롯하여 전국 각지에서 ‘박근혜 퇴진!’ ‘박근혜 하야!’라고 피토하는 심정으로 외쳤습니다. 전국에서 울려 퍼진 분노의 함성에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야당은 물론 박근혜 정권의 부역자인 집권 여당도 놀라움을 넘어 긴장하며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새누리당의 전 대표는 대통령의 탄핵을 이야기하고, 새누리당의 해체를 이야기하는 국회의원들도 많습니다. 검찰의 현직 대통령에 대한 조사가 초읽기에 들어갔습니다. 사면초가에 몰린 박 대통령은 어떤 식으로든 자리에서 물러날 것입니다. 계속 버틴다면 국민의 힘으로 끌어내려야 합니다. 하지만 대통령의 퇴진이 우리의 최종 목표는 아닙니다. 불의한 대통령과 그에게 부역했던 이들의 참회와 처벌은 생명과 정의와 평화 가득한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거쳐야 할 필수적인 과정일 뿐입니다. 하지만 이 과정이 없다면 더 나은 세상은 불가능하기에 우리는 오늘 이 자리에서 간절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더 나은 세상은 어떠한 모습일까요? 시민들은 지난 12일 서울 도심에서 열린 ‘100만 촛불항쟁’에서 박근혜 대통령 퇴진 이후 한국사회의 모습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작은 포스트잇 종이에 담아 쏟아냈습니다. “빽 많고 돈 많은 인간들만 성공하는 사회가 아닌 노력으로 보답 받을 수 있는 사회,” “노력을 배신하지 않는 사회,” “열심히 한다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 “돈 없는 내 부모를 탓하지 않아도 되는 나라,” “대통령이라고 봐주지 않는 나라,” “정말 깨끗한 나라,” “권력이 판치지 않는 나라,” “부정부패가 일어나지 않고 평화로운 국가,” “희망이 있고 꿈을 포기하지 않도록 줄 세우지 않는 사회,”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나라,” “꿈꾼 만큼 행복해질 수 있는 세상,” “배려, 존중, 공존하는 사회” “모두가 존중받는 사회, 모두가 사랑할 수 있는 사회, 모두가 존경할 수 있는 사회” “속이지 않고 사랑하며 함께 나눌 수 있는 나라.” 참으로 소박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과는 너무 먼 세상입니다. 바로 이러한 세상이 우리가 이 땅에 보듬어야 할 하느님나라가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 하느님나라를 이루기 위해 오늘 여기 모였고, 하느님나라를 이루기 위해서 지금 이 시간 가장 큰 걸림돌인 부패한 권력의 퇴출을 명령합니다.

주님께서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맡겨주신 고귀한 사명이 곧 하느님나라의 선포입니다(루카 9,1 참조). 하느님나라를 선포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하느님나라를 선포한다는 것은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이라고 일부에서 외치듯이, 단지 입으로 ‘하느님나라가 가까이 왔다!’ 라고 떠벌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나라를 선포한다는 것은 우리가 먼저 하느님나라의 삶을 살고, 이 삶을 통해 벗들에게 하느님나라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느님나라는 그것이 어떠한 형태든 인간이 만들고 주인처럼 섬기는 우상이 활개 치는 세상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몸소 다스리시고, 우리는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세상입니다. 그러기에 하느님나라를 선포한다는 것은 재물 권력 온갖 잡신이 아니라, 생명 사랑 정의 평화의 하느님만이 하느님이심을 장엄하게 드러내는 것입니다. 하느님나라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미 시작되었고 완성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하느님나라를 선포한다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환상을 심어주는 것이 아니라, 감추어진 소중한 실체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하느님나라는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사람이 본연의 모습을 온전히 드러내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느님나라를 선포한다는 것은 이기심이라는 두꺼운 벽에 둘러싸여 있던 사람의 선한 본성, 곧 사랑과 정의를 다시금 깨우는 것입니다. 또한 하느님나라를 선포한다는 것은 때로는 거짓과 불의마저 양식 삼아 더 높은 곳에 오르려 헛된 노력을 아끼지 않는 소유와 권력의 노예로서의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섬김과 헌신의 참사람이 되라고 일깨우는 것입니다. 하느님나라는 모든 이가 하느님과 함께 하느님 안에서 더불어 사는 기쁨의 세상입니다. 따라서 하느님나라를 선포한다는 것은 치열한 경쟁 끝에 획득한 승리의 환희가 아니라, 내 것 네 것 갈림 없는 소박한 나눔이 주는 잃어버린 참 기쁨을 되찾아 주는 것입니다. 하느님나라는 부르시는 하느님과 부르심 받은 사람이 함께 일구어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느님나라를 선포한다는 것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새사람이 되고, 보잘것없는 새사람들이 모이고 모여, 차가운 이 세상의 딱딱한 껍질을 깨뜨려, 감춰져있는 듯 희미한 하느님나라를 빛처럼 환히 드러내자고 초대하는 것입니다.

열정으로 하느님나라를 선포하고 계시는 든든한 믿음의 벗님들!

우리는 오늘도 힘차게 또 한걸음 내딛습니다.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새벽빛이 서서히 솟아오르고 있습니다. 고통과 분노 가득했던 짓밟힘과 패배의 시간을 뒤로 하고 승리의 여명이 비치고 있습니다. 참으로 감격스러운 오늘입니다. 하지만 오늘에 머무르지 맙시다. 1960년 4월 혁명, 1980년 5월 광주, 1987년 6월 항쟁을 기억합시다. 피 흘려 쟁취한 민주주의가 서서히 불의한 이들의 손아귀에 유린되어 갔음을 뼛속 깊이 새깁시다. 작은 승리에 취하여 완전한 승리로 나아가지 못한 통한의 역사를 잊지 맙시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다시 보게 된 예리코의 눈먼 이가 편안한 옛 삶의 자리가 아니라 낯설지만 기쁨과 희망 가득한 새 삶의 자리를 찾아 예수님을 따라나섰음(루카 18,43 참조)을 생각합시다. 이제 다시 시작입니다.

강론을 마치면서 바오로 사도가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낸 둘째 편지를 묵상하면서 쓴 글을 벗님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함께 한걸음

사랑하는 벗이여 동지여!

아직은 멈출 때가 아닙니다
아직은 잠시 쉴 때가 아닙니다

아직은 승리의 기쁨에 취할 때가 아닙니다
아직은 패배의 고통에 비틀거릴 때가 아닙니다

우리는 여전이
길 위에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는
함께 한걸음 내딛는 것입니다

함께 길을 걷는 벗이여 동지여!

영원한 격려와 좋은 희망으로
쉼 없이 우리를 다그치시는
주님의 길을 걸어갑시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우리 함께 걷기 시작한 길
언제인지 모르지만 마침내
우리 함께 마치게 될 길

작은 승리와 작은 패배에
연연하지 않으며 묵묵히
함께 한걸음 내딛읍시다

당신 몸소 걸어가신 길을
함께 걷는 우리와 더불어서만
주님께서는 오늘도 걸으시기에

주님께서 앞서고 우리 뒤따라 걷는 길
사랑 정의 평화의 길
부활을 향한 십자가의 길
시작은 있어도 시작을 알 수 없고
끝은 있어도 끝을 알 수 없는 길

사랑하는 벗이여 동지여!
어제도 그러했듯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함께 한걸음 내딛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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